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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 타임즈 도티기념병원 소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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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주민과 국제난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자선병원

5월 3일, 서울의 마리아수녀회 조지 도티 기념병원에서, 카메룬 출신 국제피난민 케디스 코메씨(가운데)와 아기를 출산하여 입원중인 그의 부인 마리클레어 엔지에 에베니에.마리아수녀회 서울분원장이며 병원책임자인 권 클라라 수녀가 병실을 방문하다.
Korea Times photo by Kang Hyun-kyung 가난한 이주민과 국제난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자선병원 5월 3일 , 서울의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도티기념병원에서 카메룬 출신 국제난민 부부에게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신생아의 아버지 케디스 코메씨는, 부부가 운이 좋아 자기들과 같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무료진료를 제공하는 이 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만일 현재 우리사정이 호전되지 않으면, 자지들 본국인 끔찍한 분위기로 갓난아기를 데리고 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생각하니 괴롭기만 정말 걱정입니다.” 일자리가 없는 아버지는 부인과 함께 현재 신청 중인 난민비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병원 의료진의 무료진료에 감사의 글을 보내고 있다.
코리아 타임즈코리아 타임즈 2016. 5. 10 자선병원 5예정일 보다 6일이나 앞당겨 출산 했기 때문에 부인은 입원하자 몇 시간 만에 아기를 출산하였다. 병원에 도착해서부터 부인 곁을 떠나지 않는 코메씨는, 정오에 시작한 진통의 순간에도 부인을 간호했다. 두 번째 아기가 큰 어려움 없이 태어나자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부부의 한국행 여행은 작년에 시작되었다. 코메씨의 여자 친구이었던 에버니에는 마을 나이 많은 노인에게 결혼할 것을 강요당한 끝에 카메룬을 떠났다. 코메씨의 말에 의하면, 에버니에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회의는 그녀의 장래문제를 의론한 결과, 마을의 전통에 따라, 추장의 세 번째 부인이 되는 결혼을 결정했다고 한다. 카메룬에서는 강제결혼이 여전히 존재하며, “폰(Fon)"이라고 칭하는 마을추장은 많은 부인을 거느린다고 한다.
“그때 우리는 부부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가족회의 결정을 받아드릴 수 없었던 그녀는 나를 찾아 두바이에 왔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코메씨는 제 3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한 끝에, 난민을 받아줄 나라를 찾기 시작했다. “두바이는 난민을 받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난민을 받아 줄 다른 나라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부부의 첫 아기는 현재 나이지리아에 있는 코메씨의 어머니가 돌보고 있다. 부인과 함께 한국에 온 코메씨는 10개월째 일자리가 없어 앞으로 살아갈 일을 걱정하고 있다. 부부는 카메룬에 있는 가족들이 이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1982년, 병원설립기금을 후원해 준 도티씨 아버지의 이름으로 설립된 도티기념병원은 서울 은평구 서북쪽 동네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이 병원은 의지할 곳이 없는 가난한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골드만 삭스 투자은행의 임원이었던 조지 E. 도티씨는,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소년/소녀의집 아동과 가난한 일반 환자를 위한 무료병원 건립을 계획한 미국인 소 알로이시오 신부(Fr. Aloysius Schwartz) 청원을 받아드려 당시 미화 백 만 불을 기부하였다.
병원개원 이래 신생아 7,000명을 포함해서 3 백 만 명의 환자가 혜택을 받았다. 마리아수녀회 서울분원장이며, 병원관리를 맡고있는 권 클라라 수녀의 말에 의하면, 2000년대 들어서서 부터 많은 가난한 이주민과 난민환자가 무료진료를 받기 위하여 이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많은 가난한 환자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이 실시된 후, 2000년대부터는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병원은 언제나 환자들로 넘쳐났습니다. 정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선별해야 했습니다. 입원시키기 이전에 환자를 면접하고, 정말 병원비가 없어 다른 병원에 갈 수 없는 가난한 환자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가정 방문조사를 하였습니다. 환자의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는 가정형편이면, 다른 병원으로 가도록 권했습니다.”
권 수녀는, 건강보험제도가 일반 환자들에게 적용된 2000년대 이후, 사정은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형병원들도 가난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선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중요한 발전은 결과적으로 우리 병원의 환자수를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환자의 감소는 가난한 사람의 수가 줄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그래서 병원의 규모를 줄이고 재정자원을 다른 자선사업에 사용할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도티병원은 규모를 줄이지도 아니했다. 2004년부터, 사회안전망복지로 생활하는 새로운 구릅의 환자들, 즉 외국인 노동자, 여성이주민, 그리고 난민들이 이 병원을 찾아 시작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91개국 출신 39,000명의 환자가 이 병원에서 의료혜택을 받았다. 권 수녀는, “그들의 국적은 다양합니다. 어떤 환자들은 내가 생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입원환자의 대부분은 출산을 위한 산부인과 환자입니다.” 라고 말한다.
30년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권 수녀에게는 많은 흐뭇한 일들을 경험 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실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병원에서 도움 받은 환자들 중에는 후원자가 되고, 직원이 되고, 사회사업가가 된 이들이 있다고 한다. 어떤 산부인과 환자는 이 병원에서, 오래 전에 출산하여 성인이 된 자녀를 데리고 방문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권 수녀는, “어떤 젊은이는 20년 전 자신의 어머니를 수술하여 생명을 구해준 보답으로, 자신의 한 달 봉급을 몽땅 기부했습니다. 아기를 출산한 많은 임산부들이 병원 문을 떠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합니다. 이 병원의 추억은 그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날이 닥쳐도,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권 수녀는, 이주민 환자들이 받은 친절한 의료진에게 감사하는 글을 주고 간다고 말한다. 어떤 인도출신 환자의 남편은 2 페이지에 달하는 감사편지를 주고 갔다. 이 사람은 자신과 부인의 양친이 그들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아, 한국에 오게 되었고, 병원 혜택을 받게 되었다고, 의료진의 친절에 감사하는 글을 썼다.
권 클라라 수녀는, 이런 모든 감동적인 이야기는 병원을 설립한 소 알로이시오 신부와 병원 건립에 도움을 준 조지 E. 도티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권 수녀는, “도티씨는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병원 개원 후 몇 차례 방문하셨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는 그분의 아들과 딸이 계속 도와주고 있습니다. 도티씨는 2012년에 94세로 사망 하셨습니다.”
“그분 생전에, 우리 소 신부님이 말씀하시기를, ‘도티씨는 열정적인 박애주의자이며, 마치 우리 마리아수녀회와 같이 자신도,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하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소 신부님은 그분에게, ‘당신은 자선사업보다는 돈벌이에 재주가 있으니 돈을 많이 벌고, 자선사업은 내가 하겠으니, 나에게 후한 기부금을 주는 자선사업가가 되시오.’ 라고 충고했다고 말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환자구성이 크게 변하였습니다. 많은 가난한 이주민들과 난민들이 우리 병원을 찾아 무료진료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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